藝文史 展示室

어린 정조의 삐뚤한 손글씨, '개야 짖지 마라' 적힌 차사발 보셨나요?

yellowday 2020. 3. 19. 10:49
입력 2020.03.19 03:00

[조선일보 100년 기획 -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한글박물관 '김씨 부인 한글 상언', 중앙박물관 '한글 금속활자' 등
상설전시실에 숨어있는 우리가 몰랐던 한글 유물들

어린 정조가 큰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위)와 한글 묵서가 적힌 차사발(가운데).
어린 정조가 큰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위)와 한글 묵서가 적힌 차사발(가운데). /국립한글박물관·국립중앙박물관

'상풍(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뵌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어린아이 글씨가 삐뚤빼뚤한데 내용은 사뭇 의젓하다. 이 한글 편지를 쓴 주인공은 조선 22대 임금 정조(1752~1800).
편지 끝에 '원손(元孫)'이라 썼으니 세손 책봉 이전인 1759년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가 7세 이전에 큰 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안부 편지다.

'정조어필 한글 편지첩'은 국립한글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있다. 원손 시절부터 재위 22년까지 정조의 한글 편지 16점을 묶었다.
정조가 한글로 쓴 편지라는 희소성이 있는 데다 연령대에 따른 정조의 한글 필치 변화상을 볼 수 있어 가치가 높다.
김민지 학예연구사는 "정조가 쓴 편지는 지금까지 원문이 공개된 것만 수백 점에 달하나 대부분 한문 편지"라며 "외가 친척인
큰 외숙모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주로 안부를 묻는 것으로, 외가 식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정조의 인간적 면모가 드러난다"고 했다.

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우리가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귀한 한글 유물이 숨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엔 18세기 사대부 여성이 한글로 쓴 정치적 탄원서도 있다. 서포 김만중의 딸이자 신임옥사(辛壬獄事) 때 죽임을
당한 이이명의 처 김씨 부인(1655~1736)이 손자와 시동생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김씨부인 한글 상언(上言)'이다.

가로 160㎝, 세로 81.5㎝. 정자체로 1400자 남짓 정성 들여 썼다. '이 몸이 만 번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부월(斧鉞)에
엎드리기를 청하니, 바라오니 천지부모(天地父母, 즉 영조)께서는 특별히 원혹한 정사를 살피시옵소서.'
박물관은 "정치적 격변기에 일어났던 당쟁의 참화 속에서 한 사대부 여성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며 "당시에 한글의
사용 범위가 매우 넓었음을 보여주며 18세기 당시의 한글을 격조 높은 언어로 구사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고 했다.

조선시대 한글 금속활자.
조선시대 한글 금속활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도 흥미로운 한글 유물이 많다. 2층 기증문화재실에는 한글 묵서가 적힌 일본 도자기가 있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이 17세기 초 야마구치현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사발이다.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이 다 도둑인가. 자목땅 호고려님이 지슘 다니는구나. 그 개도 호고려 개로다. 듣고 잠잠하노라.'
호고려(胡高麗)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을 현지 일본인이 부르던 호칭으로 '오랑캐 고려 사람'을 뜻하는 말.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조선 도공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심경을 도자기 표면에 써내려간 것이다.

왕세자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한글 활자도 감동을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한글 금속활자 7 50여 자와 한글 목활자 1만3000여 자가 소장돼 있다.
박물관은 "조선의 공식 문자는 한자였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만든 활자도 대부분 한자 활자였다.
하지만 왕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을 교육하거나 백성에게 유교 이념을 가르치기 위해 언해본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한글 활자를 제작했다"고 했다. 백성에게 배포하는 언해본에는 주로 목활자를 사용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