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 * Korea

吉祥寺 (길상사)

yellowday 2018. 10. 7. 14:57

吉祥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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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불교 사찰.

1997년에 세워졌으므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大苑閣)이 불교 사찰로 탈바꿈한 특이한 설립 이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력

공덕주 김영한(1916~1999)은 가난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만난 남편과 사별한 후, 기생이 되었다. 기명은 진향(眞香). 시인 백석과 사랑에 빠졌으나, 신분 때문에 남자 측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여 끝내 맺어지지 못했다.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자야'라는 여성이 그녀다.[1]

그리고 해방 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면서 백석과는 영영 이별하게 되었고, 성북동 기슭에 요정인 대원각을 차려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백석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항상 마음에 담아둔 채 홀로 지냈다. 백석의 생일인 7월 1일에는 매년 식사를 하지 않으면서 그를 기렸다고 한다. 백석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지극했는지는 생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언제 백석에 대해 가장 생각이 나느냐는 질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어디 있나?"라고 답했고, 대원각을 시주할 당시 심경에 대해선 "1,000억 원이란 돈이 그 사람(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고 말했단다.

그러던 중 승려 법정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1987년 법정 스님에게 요정 터 7,000여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간청하였다. 실로 대인배가 아닐 수 없다. 법정은 처음에 사양하였으나, 결국 1995년 이를 받아들여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웠고, 이때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당시 시가로도 1,000억 원이 넘는 액수였다고 하는데, 무소유를 설하던 법정이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시주를 받은 데 대하여 불교 내부에서도 논란은 있었다. 그러나 법정이 신나서 덥석 받은 것도 아니고, 10년 가까운 실랑이 끝에 그녀의 마지막 원을 이루어준 것이니 이를 비난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1999년에 김영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화장하여 절터에 뿌려졌다. 절터에 골고루 산골했기 때문에 따로 무덤은 없으나, 그녀를 기리는 공덕비가 절 안에 있다. 2010년 법정도 여기서 입적했다. 극락전에 김영한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진영각에 법정의 영정과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사족으로, 법정 스님이 처음 출가하신 사찰인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다. 출가한 사찰과 한때나마 같은 이름을 사진 사찰에서 입적하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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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의 명물인 관세음보살상.

현대식 조각품인 관세음보살상은 법정이 종교 간 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에게 의뢰하여 봉안하였다. 사찰의 설립식 행사 때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절을 방문해 축사를 한 적이 있고, 법정은 이에 대한 답례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을 방문해 답사했다. 성모 마리아 비슷한 분위기인데, 나이 지긋한 불자들은 좀 낯설어하기도 하는 듯. 최종태 씨는 길상사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종로구 혜화동 성당성모상도 조각했는데, 이 성모상과 관세음보살상은 마치 친자매처럼 매우 닮았다. 제작자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최종태의 성모마리아와 관세음보살

대중교통으로 찾아가기가 좀 불편하다. 성북동은 버스노선조차 별로 없는 부촌이라서... 2015년 4월자로 셔틀버스가 폐지되었다.대신 길상사 앞까지 가는 마을버스 노선인 서울 버스 성북02가 길상사까지 연장되었다. 걸어서 올라가면 20~30분 쯤 걸린다. 그래서 석가탄신일과 같이 사람들이 많이 오는 날에는 교통 전쟁이 벌어진다. 어떤 택시는 이 때를 노려서 합승을 권유하기도 한다. 택시 요금은 셔틀버스 정류장 기준으로 기본요금 내.

대웅전 앞마당에 빼곡히 심어진 꽃무릇이 상당히 아름답기도 하다. 이 꽃무릇 밭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편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