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반 고흐와 '농부의 구두'

yellowday 2018. 1. 11. 07:50

입력 : 2018.01.11 03:10

칼럼 관련 일러스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지독한 불운을 헤치고 독학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던 사람이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개신교 목사의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숙부가 일하는 화랑의 수습사원, 책방 점원, 전도사 등으로 떠돌며 목사가 되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대신에 화가의 길을 걸었다.

고흐는 농부, 광부, 방직공, 우체부를 그렸고, 이례적으로 자화상 40여 점을 남겼다. 자화상은 돈 주고 모델을 쓸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자화상에서 광인(狂人) 고흐, 늙고 지친 왕 고흐, 농부 고흐, 성스러운 고흐, 방탕한 고흐, 침묵에 빠진 고흐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고흐의 붓끝은 불규칙한 점과 소용돌이치는 빗금이나 횡선을 그으며 캔버스를 채웠는데, 이 색채의 분출은 내면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고흐 그림 중 농부의 낡은 구두를 그린 '한 켤레의 구두'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전율(戰慄)을 느꼈다. 구두 앞창은 벌어지고 왼쪽 구두의 목은 접혔으며 오른쪽 구두의 끈은 함부로 풀렸다. '대지의 부름'과 '대지의 조용한 선물인 다 익은 곡식의 부름'에 응답하느라 낡아진 이 구두에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농부의 고단한 삶,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의 고독, 바람이 불어가는 들의 황량함, 가을 저녁의 덧없음, '임박한 아기의 출산에 대한 전전긍긍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의 전율'을 읽어냈다. 

고흐는 생전에 단 두 작품을 팔았다. 그림이 생계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화랑업을 하는 아 우 테오의 도움으로 근심을 떨쳐내고 그림에만 몰두했던 고흐. 술과 여자와 담배에 기대며 생명의 불꽃을 사르던 고흐. 188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돌연 왼쪽 귀를 자르는 광기를 보였던 고흐. 그는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제 심장에 총을 쏘았고, 이틀 뒤에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가 목숨을 끊은 것은 자기를 냉대한 이 세상을 향한 예술가의 퍼포먼스였을 테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