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202] 어린이 장난처럼 그린 황제의 초상화 - 우정화 서양미술 산책

yellowday 2017. 12. 20. 05:27

입력 : 2017.12.19 03:11

주세페 아르침볼도, 겨울, 1563년, 나무판에 유채, 67×51㎝,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주세페 아르침볼도, 겨울, 1563년, 나무판에 유채, 67×51㎝,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매서운 강추위에 눈이라도 내리면 어른들에게는 최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날씨다.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마른 나뭇가지와 돌멩이, 낙엽 따위를 주워다 눈·코·입을 달아줄 수 있으니 말이다.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1527~1593)의 '겨울'은 그런 아이들의 장난 같은 그림이다.

언뜻 보면 사람의 옆얼굴인데 다시 보니 메마른 고목(枯木)이다. 나무껍질에서 자라난 버섯이 입술이 되고, 턱수염 자리엔 푸릇푸릇한 이끼가 제멋대로 돋았다. 잘려나간 나뭇가지와 벌어진 틈새가 교묘하게 눈과 코가 되었고, 머리엔 가시덤불과 담쟁이 넝쿨이 부스스하게 엉켜 있다. 그야말로 눈썹이 우습고 코도 비뚤어진 이 초상화 아닌 초상화의 주인공은 무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다. 어깨에 걸친 짚풀 망토에는 그의 이니셜 'M'과 가문의 문장인 파이어스틸을 짜 넣었다. 이 그림을 보고 다 함께 웃었다니, 어지간히 성격이 좋은 군주였던 모양이다.

아르침볼도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일찍이 빈으로 이주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황실 화가로 오랫동안 일했다. 황제를 실물과 닮았으되 결점을 가리고 미화(美化)하는 초상화가 그의 주된 업무였지만, 아르침볼도는 평범한 초상화 대신 이처럼 서로 다른 계절을 드러내는 온갖 동식물을 조합해서 기묘한 얼굴을 여럿 만들어냈다. 자연을 면밀히 관찰했던 그의 그림은 초상화이면서 동시에 정물화이자 풍경화인 것이다.

황제의 앞섶에는 지중해의 겨울 과일인 레몬이 매달려 있다. 추위에 움츠러든 이들에게 겨울이 불쑥 내미는 선물 같다. 그러고 보니 겨울에는 역시 레몬차가 제격이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