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文대통령 집무실에 盧대통령 풍자했던 '월전 장우성' 그림이?

yellowday 2017. 9. 30. 22:00

입력 : 2017.09.30 11:00

장우성 "무심코 새 차 탔더니, '갈 지(之)'자 초보운전" 한시
盧, 원로들 불러 "맡은 구간 만큼은 운전 잘 하겠다" 응수

청와대가 가장 사랑한 한국화 작가는 누구일까. 예술작품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어리석지만, 중요한 장소마다 그 작가의 작품이 걸려있다면 감히 '최고'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월전(月田) 장우성(1912∼2005) 화백이 바로 그런 작가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 대통령집무실과 대통령비서실장 사무실에 장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다. 대통령집무실에 걸린 작품은 '운봉(雲峰, 1991)'이다. 파도치는 바다같은 흰 구름 위로 두 개의 검은 산봉우리가 드러나고 있고, 그 너머에서 붉은 태양이 솟는 풍경이 묘사됐다. 대통령비서실장 사무실에 걸린 작품은 '가을(연대 미상)'이다. 가을 들녘 벼이삭 위에 다섯 마리의 참새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운봉(雲峰, 1991) / 월전 장우성, 조달청 정부소장미술품 사이버갤러리
운봉(雲峰, 1991) / 월전 장우성, 조달청 정부소장미술품 사이버갤러리

장 화백은 100원짜리 동전에 담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그린 작가다. 이당 김은호 화백(1892~1979)에게 그림을 배웠다. 일제강점기 최고 권위를 자랑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932년부터 1944년까지 연속 수상했고, 서울대·홍익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문인화의 전통을 잇는 간결하고 담백한 화풍의 수많은 걸작을 남겨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거성(巨星)’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 화백의 두 그림은 청와대가 오래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컬렉션 중 일부다. 조달청 정부소장미술품 사이버갤러리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등 정부가 보유한 장 화백의 그림은 '매화', '기러기', '송학', '국화', '대련' 등 총 28점에 이른다.

장 화백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묘연(妙緣)이 있다. 예술계 원로였던 장 화백은 2003년 11월 공개한 '아슬아슬'이라는 작품 속 한시(漢詩)를 통해 "무심코 새 차를 탔더니 '갈 지(之)'자로 운전하더라. 승객들이 깜짝 놀라 간이 콩알만해져 누가 운전하느냐 물었더니 초보운전자라 하더라. 이러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어떡하나"라고 노 전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월 '나라사랑 원로모임'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장 작가의 시에 답하듯 "지금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 운전석에 앉은 제가 할 일은 차를 바르게 몰아 승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다음 대통령이 기다리는 목적지까지 가게 하는 일"이라며 "맡은 구간만큼은 운전을 잘 하겠다"고 말했다.

아슬아슬(2003) / 월전 장우성,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아슬아슬(2003) / 월전 장우성,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소장

장 화백의 두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최근 청와대를 방문했던 인사들을 통해 밖으로 전해졌다. 조선비즈의 취재결과 대다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은 장 화백을 몰랐고, 심지어 두 공간에 전시된 미술품이 있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들이 장 화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그림 선정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미술품 선정·관리 방식에 대해 "전속 큐레이터는 없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자문을 구한다"며 "건물의 구조와 근무자의 호감도 등을 고려해 도록을 보고 고른다"고 했다.

조달청 사이버갤러리는 '운봉'의 작품 설명을 통해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이 희고 푸른 구름 저편으로 화면 상단에 살짝 얼굴을 드러낸 태양은 붉은 색으로 칠해 운무와 대조시켰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을 선정한 청와대 관계자가 떠오르는 태양이 있어 임기초 집무실에 적합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다른 작품 '가을'에 그려진 곡식과 참새는 동양화의 도상학 전통에서 유사한 중국어 발음때문에 인해 '세대를 이어가는 기쁨'이라는 상징적 의미로 쓰인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청와대에 적합한 의미를 담은 그림인 셈이다.

가을(연대 미상) / 월전 장우성, 조달청 정부소장미술품 사이버갤러리
가을(연대 미상) / 월전 장우성, 조달청 정부소장미술품 사이버갤러리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