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이영도의 시 모음 / 석류, 언약, 신록, 노을, 무제2, 무지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

yellowday 2017. 9. 16. 22:53

언약


해거름 등성이에 서면

애모()는 낙낙히 나부끼고


투명()을 절()한 수천()을

한 점 밝혀 뜬 언약()


그 자락 감감한 산하()여

귀뚜리 예지()를 간[]다




석류 /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정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신록 / 이영도


트인 하늘 아래

무성히 젋은 꿈들


휘느린 가지마다

가지마다 숨 가쁘다

오월은 절로 겨워라

우쭐대는 이 강산


(청저집 1954)





노을


먼 첨탑이 타네

내 가슴 절벽에도

돌아앉은 인정 위에

뜨겁던 임의 그 피


회한은 어진 깨달음인가

'골고다'로 젖는 노을





무제2


정정한 송백같은

당신의 사유 안에

저녁 어스름

박꽃같은 나의 정은

수석에

구름이 일 듯

조요로운 멋일래


차라리 말이 없어

당신은 바위인데

내 인생은

여울지는 실계곡


청춘에

돋는 속잎을

멧새들이 노닌다




무지개


여읜 그 세월이

덧없은 살음이매

남은 일월은

비단 수로 새기고저


오매로

어리는 꿈에

눈 부시는 무지개




청마 유치환과 정운 이영도


두 시인의 아름다운 사랑을 더듬으며 사랑이 가지고 있는 절절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한번 새겨 보면서 사람간의 사랑이 언제까지나 아름답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정향!

바람은 그칠 생각 없이 나의 밖에서 울고만 있습니다.
나의 방 창문들을 와서 흔들곤 합니다.
어쩌면 어두운 저 나무가, 바람이, 나의 마음 같기도 하고
유리창을 와서 흔드는 이가 정향, 당신인가도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이리다.
주께 애통히 간구하는 당신의 마음이 저렇게 정작 내게까지 와서는 들리는 것일 것입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는 하느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고 눈 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리길입니까?
끝내 만리길의 세상입니까?

정향!
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죄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유치환으로부터 이영도 여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