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뉴스 時事

1300년, 일본 한복판에서 지켜온 고구려의 魂

yellowday 2016. 4. 23. 07:51
  •                

입력 : 2016.04.23 03:00

[오늘의 세상]

오늘 고마(高麗)군 건군제 - 최인준 특파원 르포

마지막 왕 보장왕 후예들 정착 "한국 김치에 고려인삼 먹지요" 학교·지하철역 이름에 '고마'
"출세하려면 고마 神社로" 속설… 이곳서 참배 뒤 총리 6명 나와 일본인에 영험한 곳으로도 유명

사이타마현 히다카=최인준 특파원
사이타마현 히다카=최인준 특파원
300년 묵은 삼나무 숲에서 재일동포 여성 두 명이 가야금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곳은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부드러운 산자락 아래 푸른 논을 가로질러 맑은 강이 흐르는 곳이다. 1300년 전, 고구려 사람 1799명이 이곳에 정착했다.
대제국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무너진 뒤 망국의 유민으로 48년간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떠돈 뒤였다.

고구려 사람들이 세운 '고마군(高麗郡)'이 23일 건군(建郡) 1300년을 맞는다. 고구려 사람들은 이곳에 새 고향을 일군 뒤,
자기네를 이끌고 현해탄을 건너온 고구려 왕자를 위해 사당을 세웠다.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高麗若光·
일본 이름 고마노잣코)을 기리는 '고마(高麗) 신사'다. 고마군이 처음 생긴 뒤부터 1896년까지 1180년 동안 히다카시 일대는
쭉 '고마군'이라 불렸다. 고마 신사가 이 지역의 중심 역할을 했다.

고약광의 60세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 궁사(宮司·최고 신관)는 기념 제사 준비로 22일부터 분주했다.
인근 지역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이 신사를 후원해온 한·일 민간인 단체가 '약광의 모임'이다. 이 모임 회장인 재일동포
2세 박인작(80)씨는 "일본에 백제 유민들이 세운 신사도 있고 신라 사람들이 세운 신사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고마 신사는
'한민족의 후예'라는 점을 단 한 번도 숨긴 일 없이 당당하게 밝혀왔다는 점에서 특별한 곳"이라고 했다.

지난 1월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군(高麗郡)에서 군(郡) 창설 1300년을 기념해 열린 고구려 전통 의상 재현식.
지난 1월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의 고마군(高麗郡)에서 군(郡) 창설 1300년을 기념해 열린 고구려 전통 의상
재현식. 일본 조정은 716년 고마군을 설치하고 이곳에 고구려 유민 1799명을 모여 살게 했다. /고마 신사 제공
본고장인 한국에선 '고구려'라는 말이 역사책 빼고는 대부분 사라졌는데, 이곳에는 지금도 고구려를 가리키는 '고마'란
말이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가령 마을 복판을 흐르는 강 이름과 동네에서 제일 큰 택시 회사 이름 모두 '고마가와(高麗川)'였다. 학교와 지하철역 이름에도
'고마'가 붙었다. 신사를 지키는 궁사 가족은 대대로 '고마'란 성을 썼다. 궁사 가족이 아니라도, '고마이(高麗井)'란
성을 쓰는 토박이가 적지 않았다. 고마 신사 관계자들은 "나카야마(中山)나 가토(加藤) 같은 성을 쓰는 사람 중에도,
고마 가문에서 갈라져 나간 방계가 많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지역 명물로 자랑하는 향토 요리도 '고마나베(高麗鍋)'였다. 동네 주민 간다(神田·67)씨가 "우리 지역은 수백년 전부터
쓰케모노(채소 절임) 요리가 발달했다"면서 "저도 고구려 후손"이라고 했다. "절인 배추에 된장·간장을 풀어서 푹 끓인 찌개를
고구려 사람들이 즐겨 먹었다고 전해져 와요. 요즘은 아예 한국 김치에 고려 인삼까지 넣어서 해 먹습니다."
마루야마 아키라 사이타마신문 상담역은 "뿌리를 잊지 않는 고마 신사는 1300년 동안 한·일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일의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고마 신사를 고맙게 여긴 재일동포들이 800만엔을 모아 지난 4일 신사 입구에 기념비도 세웠다. 기념비엔 이 지역에
'고마군'을 설치한다는 '속일본기' 속 글귀와 함께,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를 새겼다.
고마 신사는 재일동포 사회에서만 명소로 소문난 게 아니었다. 일본 최고(最古)의 신사 중 하나답게, 일본 주류 사회에서도
이 신사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가 나왔다. '출세하고 싶으면 고마 신사에 가서 빌라'는 속설도 있다.
사이토 마코토(1858~ 1936)를 포함해 고마 신사에 참배한 뒤 일본 총리대신이 된 정치인이 6명이나 돼서 나온 얘기다.
1990년대에는 '큰 사건이 있을 땐 고마 신사에 가서 빌어야 수사가 잘 풀린다'는 얘기가 퍼져, 도쿄지검·도쿄고검 검사들이
줄줄이 참배하기도 했다. 지금도 매년 40만명이 찾는다.

23일 기념식에는 하세 히로시 일본 문부과학상이 참석한다.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동생인 고(故) 다카마도노미야 친왕의 부인
히사코 여사도 온다. 히사코 여사는 '약광의 모임' 명예고문을 맡고 있는 라종일 전 주일 대사와 친분이 깊다.
별세한 남편도 친한파로 꼽혔다. 한국 쪽에선 유흥수 주일 한국 대사와 김호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한다.
주일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다음 달 일본인 대상으로 고마 신사를 찾아가 고대 한·일 교류사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했다. 고마 신사 측도 이에 화답해 올 한 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고마 신사
[고구려 왕자 모신 고마 神社]

서기 668년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高麗若光·일본 이름 고마노잣코)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와 지금의 도쿄 일대에 해당되는 무사시노구니에 정착했다. 일본 조정이 716년 지금의 도쿄 서쪽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일대에 '고마군'(高麗郡)을 설치하고, 유민 1799명이 모여 살게 했다.
고마 신사는 그때 고마군 사람들이 고약광을 모시려고 세운 신사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