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캐딜락 타던 김수환 추기경이 큰 충격 받았던 수녀의 한마디

yellowday 2016. 2. 26. 08:15

입력 : 2016.02.26 04:40

[김수환 추기경 기린 책 2권]

/서울대교구 제공

아, 김수환… - 일생 촘촘히 재구성
그 사람… - 17명 인터뷰 모아 엮어


"추기경님, 이런 고급 차를 타고 다니시면 길거리의 사람 떠드는 소리도 안 들리고 고약한 냄새도 안 나겠네요."

1969년 김수환〈사진〉 추기경과 함께 캐딜락 승용차를 타고 가던 한 수녀가 농담을 던졌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이 탄생하자 천주교 신자 기업인들이 선물한 승용차였다. 그러나 김 추기경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그날 밤 그는 십자가 앞에 꿇어앉았다. 자신도 모르게 귀족이 된 모습을 통렬히 반성했다. 그는 결국 돌려보내고 평생 고급 차는 타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다시 한 번 캐딜락을 탔다. 선종(善終) 후 장지로 가는 영구차였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7주기를 맞아 최근 그를 기리는 책 2종이 선보였다. 전기(傳記) '아, 김수환 추기경'(김영사) 그리고 김 추기경과 교유했던 17명의 인터뷰를 모은 '그 사람, 추기경'(소담출판사)이다.

'아, 김수환 추기경'은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펴낸 전기작가 이충렬씨가 메모와 일기, 강론과 기고문, 언론기사와 관련 인사 인터뷰를 통해 김 추기경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앞의 '캐딜락 사건'도 김 추기경의 비서를 지낸 장익 주교에게 확인한 내용이다.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 제공
특히 당시 교황청 기관지 등의 기사를 토대로 1969년 당시 만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된 배경을 분석한 부분이 눈에 띈다. 요한 23세에 이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가톨릭 쇄신을 밀어붙이며 보수파의 반발에 부딪혔던 바오로 6세 교황이 '젊은 우군(友軍)'으로 김 추기경을 발탁했다는 분석이다. 독일에서 당시 선진 학문 분야이던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변화된 성속(聖俗) 관계를 고민하며 공의회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제3세계 가톨릭의 입장을 대변해온 젊은 추기경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에 앞장섰지만 민주화 이후 노년엔 후배인 함세웅 신부로부터 "시대에 뒤진 분"이란 소리를 들으며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맛봐야 했던 김 추기경의 87년 생애가 촘촘하게 재구성돼 있다.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평화방송이 엮은 '그 사람, 추기경'은 생생함이 생명이다. 2009년 당시 명동성당 주임사제로 김 추기경에게 마지막으로 병자성사를 준 박신언 몬시뇰은 '빵구 난 양말'을, 이해인 수녀는 윤동주의 '서시'를 다 외지 못하는 김 추기경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차마 못 외우신다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그 구절이 너무 와닿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길을 물어야 되는데, 길을 알려줄 목자가 없는 것"으로 김 추기경의 빈자리를 아쉬워하고, 안동교구장을 지낸 두봉 주교는 "참 웃기고 울리기를 잘하신 분"으로 기억한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