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 * Korea

참선 또 참선…'진짜 나'를 마주하다

yellowday 2015. 2. 15. 09:21

입력 : 2015.02.12 04:00 / 수정 : 2015.02.12 04:02

화계寺에서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선원에서 속세로
다시 돌아간다

머릿속은 하얀 순백 도화지

무엇을 보았는가 묻는 너의 재촉에
나는 말을 잃네

그저 절간의 색시처럼
묵묵히 따라 나섰을 뿐이지만

벌거벗은 내 몸 구석구석 보고오니
이보다 더한 소득 있으랴

오후 7시. 보통날이면 왁자지껄 맛집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을 보며 저녁을 먹거나 지인들을 만나거나 혼자 여가생활을 즐기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곳 화계사의 저녁 7시는 도시의 새벽보다 고요했다. 속세를 방황하는 사람들이 언제든 들어와 머물다

가라는 듯 붉은색 등불 수백개가 자애롭게 화계사를 밝히고 있었다. 천주교 신자인 나로선 낯설고 매혹적인 풍경에 한참을

쳐다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통날은 아니구나."

일정 기간 특정 사찰에서 머무르며 그 사찰의 일상과 불교의 정신을 체험하는 템플 스테이, 나에겐 첫 경험이다.

종교·회사·사람 등 모두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낯설고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세계 곳곳에 선원 120여개가 있는

화계사는 국제 포교 중심 사찰이다. 자연스레 발걸음조차 조심스러워졌다. 템플 스테이 참가자 모두 한방에 모여 스님과

대면했다. 연예인 못지않은 피부를 자랑하는 스님은 온화한 미소로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 모두를 흔연히 맞아주셨다.

자신의 법명이 삼성도 산삼도 아닌 산성 스님이라는 우스갯소리와 젊은 사람들을 위해 불교 용어를 영어로 설명해주시는

 재치까지 보였다. 산성 스님 덕에 절의 무거운 기운은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됐다. 오후 9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새벽 5시의 참선. 생각, 판단, 분석은 잠시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몸을 멈춘다. 고요를 느낀다. 생각이 나면 나는 대로, 생각을 좇아가거나 붙잡지 않는다. 새벽 5시의 참선. 생각, 판단, 분석은 잠시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산성 스님의 말이 아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옛 서양 속담이다.

즉, 불교에도 불교만의 규칙과 예절이 있는 것이 당연지사. 새벽 4시. 희미한 목탁 소리가 화계사 곳곳에 스며든다.

바닷가 오두막에서 잔잔한 파도소리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 같은 달콤하고 포근한 알람 소리다.

오히려 잠이 더 잘 오는 역효과마저 느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화계사 가운데 위치한 범종각(梵鐘閣)에서 들려오는

대종과 법고, 운판의 장단 소리에 벌떡 일어난다. 도시인들에게 아직은 이른 화계사의 새벽 공기가 살갗을 에워쌌고

몸은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예불 장소인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안은 분소의(糞掃衣)를 정갈히 차려 입은 스님들이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분소의는 '똥 묻은 옷'이라는 뜻,

탐심(貪心)을 삼가고 검소함을 닦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 뜻을 그대로 이어받듯 예불의식은 한 치 오차 없이 청렴하고 엄숙히 진행됐다.

템플 스테이 참가자들은 스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예의 주시하며 따라갔다. 불가의 절은 일반적인 절과 조금 다르다.

두 손을 합장하여 절을 하고 두 손을 양 관자놀이 위로 높였다 내려놓는다. 보기엔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일반적인 새해 복을 비는

절과는 근본이 다르다. 나 자신을 참회하고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부처님과 나 자신에게 올린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 번을 하더라도 공을 들이면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40분의 예불을 마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참선 시간을 1시간 정도 가진

뒤에야 아침 공양을 할 수 있었다. 매일같이 이런 생활을 반복한다고 하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불교는 한 인간의 몸을 왜 이렇게

고달프게 하면서 아침을 맞이하는 것인가?

콩나물무침·오이무침·두부조림·김치·카레소스감자·야채샐러드 그리고 따뜻한 밥과 뭇국. 화계사의 아침 공양이다.

벽에 새겨진 '빈 그릇 운동 서약' 문구도 눈에 들어온다. 밥 한 그릇도 감사히 여기며 먹을 만큼만 덜어 남기지 않고 먹으라는 것이다.

절에서 하루 묵었다고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 것인지 그날 밥은 쌀 한 톨까지도 맛있게 느껴졌으며 굶주린 송아지가 핥아 먹은 듯

내 접시는 새 접시처럼 깨끗해졌다. 평소에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도 나 자신을 낮춰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든든하게 속도 채웠으니 이제 템플 스테이의 마지막 관문 108배를 할 차례다. 산성 스님은 경험이 없는 우리 참가자들을 위해

녹음 CD를 틀어주었다. 덕분에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108배를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절반도

못 가 다리가 제멋대로 중심을 잡지 못한다. 숫자를 하나씩 세어나가던 머리도 빙빙 돌았다. 결국 90회까지 셌을 때 108배가

마무리되는 사소한 기쁨을 누리며 매듭을 지었다. 결과적으로 108배는 나에게 무거운 짐을 주었다. 생각보다 지은 죄가 넘친다는

것과 그동안 감사해야 할 일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짐이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