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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 - 대한민국 제 1, 2, 3 대 대통령

yellowday 2015. 1. 17. 10:30

이승만
대한민국 제 1, 2, 3 대 대통령 이승만
대한민국 제 1, 2, 3 대 대통령 이승만
대한민국 대한민국제1·2·3대 대통령
임기 1948년 7월 24일 ~ 1960년 4월 26일
부통령 이시영 (1948 ~ 1951)
김성수 (1951 ~ 1952)
함태영 (1952 ~ 1956)
장면 (1956 ~ 1960)
이기붕 (1960)
총리 이범석 (1948 ~ 1950)
장면 (1950 ~ 1952)
장택상 (1952)
백두진 (1952 ~ 1954)
변영태 (1954)
후임: 윤보선(제4대)

 

 

 

 

이승만(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제1·2·3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전주.

대한제국 시대에는 협성회 회보독립신문 주필, 교육계몽운동 등으로는 독립협회 활동 등을 하였다.

대한제국 말기 밀사로 도미하였다가 실패했다고 알려져 왔으나,

최근 당시 이승만은 대한제국 정부나 황제의 대리인이 아니라 일진회의 대리인이라고 자칭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2]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하와이에서 한인학원과 한인학교 등을 운영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의견이 갈라섰을 때 그는 국내의 사정을 외국에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외교독립론을

주장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으나 국제 연맹에 위임통치를 건의 한 것을 계기로,

임시의정원에 의해 탄핵·파면되었다.[3]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국무총리, 한성 임시정부와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의 수반을 거쳐

1919년 9월부터 1925년 3월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미외교위원부 위원장,

국무위원회 외교위원 등을 역임했다. 주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벌였다. 1933년 3월 6일의 제25회 임시 의정원

회의에서 무임소 국무위원에 보궐 당선되었다.[4] 이후 1933년 11월에 다시 임시정부 국무위원에 선임되고

1934년 4월 2일에는 임정 외교위원에 선임되었다. 일제 강점기 중반에는 스위스 등을 상대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한편

일본의 미국 침략을 경고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군 OSS와 임시정부 간의 연결을 주선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미국 체신청에서 발행한 태극기 모양 우표 발행에 크게 기여했으며, 항일 단파 라디오 방송 연설

등에도 참여하였다. 1945년 해방 후 조선인민공화국주석에 추대되었으나, 귀국 후 거절하였다.

 

1945년 12월부터는 김구·조소앙·김성수 등과 함께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주관하였으며 정부수립 방법으로는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지지,추진하였다. 대한민국 초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장, 대한민국초대·2·3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1952년사사오입 개헌 으로 1960년 4대 정·부통령 선거에 연임하였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일어난 4·19 혁명 직후

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 하야하고,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위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