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일본은 사과 않는데 우리 보고 반성하라니… '조선인 책임론'의 함정

yellowday 2014. 7. 15. 05:57

입력 : 2014.07.12 03:01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제국의 위안부'
 
필자는 일제강점기 문화 현상에 관한 단독 저서를 다섯 권 쓴 한국 근대 전문가를 자처해 왔다. 부끄럽게도 출간된 지 1년이 가까워지도록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라는 책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책을 읽은 것은 저자 박유하 교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고소당하고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된 최근이었다.

자료에 대한 해석은 생경했고, 논리적 비약이라고 비판할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책에서 기술된 사실 자체는 전혀 새롭지 않아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위안부는 일본군이 '직접' 강제 연행한 것이 아니었다. 일본군은 업자와 포주들에게 위안소 설치와 운영을 위탁했는데, 그들 중 상당수는 조선인이었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이 업자들과 포주들에게 인신매매당하거나 속아서 끌려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시아, 태평양 전역을 무대로 전쟁을 치르던 300만 일본군이 최후방에 해당하는 조선에서 한가하게 여성들이나 강제 연행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유하 교수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 정부와 불법적인 모집을 묵인한 일본군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일본 정부가 아니라 사기, 강제 매춘 등 범죄 행위를 저지른 업자와 포주들이라고 주장한다. 청부업자들이 법적 책임이 있는데, 그것을 사주한 당사자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에서 조선인 역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는 지적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전봉관 KAIST 인문사회학과 교수
딸과 여동생을 헐값에 팔아넘긴 아버지와 오빠들, 가난하고 순진한 여성을 감언이설로 꾀어 이역만리 전선으로 끌고 간 업자와 포주들, 그들의 불법 행위를 부추긴 이장, 면장, 군수들, 무엇보다도 무기력하고 무능한 남성들의 책임은 언젠가 반드시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를 제기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일차적 책임이 있는 일본이 납득할 만한 사과와 배상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반성하면 일본에 책임을 회피할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차분히 읽다 보면 한일 간의 화해를 위한 박유하 교수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하거나 모독할 의도가 없었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한일 공동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간의 갈등을 해결할 현명한 대안이 되기에는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일본의 역사 인식이 너무나 상식에 어긋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