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기획 <시래기가 맛있는 집 5선>
예전 같으면 농가에서 작년에 말려놓은 남은 시래기를 마지막으로 걷어 삶아먹을 때다. 봄나물이 파릇하게 돋아나기 전까지가 묵나물의 전성기였고 시래기는 늘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서민의 소박한 식재료에서 각광받는 건강식재료가 되었다. 전통과 추억의 맛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요즘 사람들에게 부족한 식이섬유나 영양소 등이 재조명을 받게 된 것이다. 시래기는 조리 방법에 따라 매우 신축적인 식재료다. 일선 식당에서 개성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나물과 된장국 일변도에서 최근에는 반찬이나 요리와 매치, 꽤 괜찮은 밥상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시래기를 소재로 다채롭게 맛을 내는 집들을 찾아보았다.
나물 무침 등 18가지 반찬으로 차린 시골 밥상
경기도 포천시 <욕쟁이 할머니집>
하지만 불만은 없다. 깻잎, 고춧잎, 콩나물, 호박꼬지, 도라지, 고들빼기, 볶은 콩 등 무려 18가지 향토색 짙은 반찬이 나온다. 예전 시골에서 품앗이로 농사일을 할 때 들밥으로 내오던 반찬 목록을 대부분 망라했다. 멸치와 된장을 넣고 끓인 시래기 된장찌개 맛도 결코 나쁘지 않다.
6000원이라는 밥값을 고려하면 저렴하면서 푸짐하고 건강한 밥상이다. 한국화를 그리는 집주인의 옛 시골집을 개조해 만든 식당이어서 그 자체로 고향의 푸근한 맛을 풍긴다. 마치 고향 집에서 밥상을 받는 기분이다. 연인이나 가족 단위로 포천을 여행하다가 들러볼만 하다.
돼지불고기와 시래기 밥의 이색적 찰떡궁합
경기도 김포시 <구이랑>
이 집은 본래 고깃집이어서 고기 메뉴의 맛과 질은 월등하다. 이런 강점이 웰빙 요소가 강한 시래기 냄비 밥과 결합해 새로운 표정의 밥상을 연출한 것. 매콤하고 고소한 돼지 불고기와 구수한 시래기 밥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빠져든다.
일단 한 번 삶은 상태의 시래기를 구매해서 3시간쯤 한 번 더 삶는다. 이 정도 삶으면 질기지 않고 적당한 무르기가 된다. 그러나 너무 질길 경우 재차 껍질을 벗겨 손질해서 적당한 식감으로 맞춘다. 갈무리한 시래기는 양은 냄비에 쌀과 함께 안쳐 밥을 짓는다. 강원도 산골에서 예전에 부족한 쌀을 보충하려고 각종 나물류와 함께 밥을 했던 ‘**밥’ 스타일 그대로다.
주문과 동시에 밥을 안치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린다. 그러나 바로 지은 시래기 밥은 그 어떤 찬보다 꿀맛이다. 고향의 내음과 정겨운 맛과 그리웠던 모습이다. 어떤 손님들은 미리 예약을 해놓고 와서 먹기도 한다. 2인용과 4인용 양은 냄비 두 가지가 있다. 밥이 다 되면 직원이 식탁으로 가져와 큼지막한 발우에 퍼준다.
돼지불고기를 반찬 삼아 그냥 먹어도 되지만, 김에 싸서 먹거나 양념장에 비벼먹으면 한결 더 시래기의 구수한 맛을 살릴 수 있다. 돼지고기와 시래기는 육식과 채식, 기름진 맛과 담백한 맛, 지방·단백질과 비타민·식이섬유 등 상호간에 상보적 관계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잘 어울리는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해장국 비빔밥 제육 등 시래기 음식 다양
서울시 송파구 <밀촌>
이외에도 시래기 비빔밥(5500원), 시래기 불고기(1인, 1만2000원), 시래기 감자탕(소 2만3000, 중 2만9000원, 대 3만5000원) 시래기 제육(1인, 1만원) 등 시래기를 다양하게 활용한 메뉴를 구비했다. 이 가운데 시래기 제육은 기존 제육볶음에 부추와 시래기를 넉넉히 얹어 푸짐하다. 2인분만 시켜도 몇 사람 술 안주로는 먹고도 남을 듯하다. 제육볶음과 부드러운 시래기를 함께 먹어 느끼하지 않은데다 육질과 나물을 동시에 씹는 입맛도 경쾌하다. 다 먹고 나서 볶아먹는 밥맛도 좋다.
이 집은 건시래기보다 생시래기를 주로 쓴다. 급랭시킨 시래기를 삶아 껍질을 벗겨 부드럽고 구수하다. 특이하게도 경기도 가평 출신의 세 자매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밀가루 풀을 쒀 넣고 다시마와 양파껍질 우린 물로 맛을 낸 열무김치 맛이 일품이다. 가평에서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주던 김치라고 한다.
양구 시래기를 파주 된장으로 끓인 푸짐한 점심
경기도 파주시 <아리몽>
국물은 멸치로 냈다. 비린내 없이 진하고 깔끔한 멸치국물 맛이다. 맛이 잘 든 깍두기와 4~5가지 찬에 시래기로 끓인 국밥이 나온다. 여기에 먹음직스런 떡갈비 하나가 함께 나온다. 점심으로 먹으면 더 없이 든든하다. 여행길에 들어와 먹어본 손님은 이 메뉴를 포장 주문해서 사가기도 한다.
시래기 국밥을 담은 뚝배기도 넉넉하고 공깃밥도 더 먹을 수 있다. 5000원에 이 정도 수준의 시래기 국밥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메뉴의 미덕이다. 다만 오후 3시까지 점심식사 메뉴로만 한정하고 있어 아쉽다.
시래기 조리 전문가가 맛낸 월등한 구수함
충남 홍성군 <일미옥불고기>
양질의 시래기나물과 함께 메뉴로는 한우시래기 국밥(7000원)과 시래기정식(8000원)이 있다. 한우시래기 국밥은 전통 탕반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한우 사골과 잡뼈를 넣고 끓여 만든 진한 육수와 시래기에 약간의 우거지를 섞어 국밥을 만들었다. 여기에 소고기 편육을 얹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 외에 여수 갓김치, 파김치, 죽순볶음 등 입맛을 자극하는 반찬들이 철따라 함께 나온다.
압력밥솥에 시래기를 넣고 밥을 지어낸 시래기정식(8000원)도 이 집의 핵심 시래기 메뉴다. 직접 담근 장으로 양념용 간장과 된장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입맛에 맞게 넣고 비벼서 먹는다. 곤드레 나물, 죽순나물, 무생채, 깻잎, 마늘장아찌 등 다양한 반찬과 제철 전도 나온다. 구수한 시래기의 향과 맛을 최대한 가두려 애썼다는 메뉴다. 향후 돌솥이나 압력가마솥으로도 밥을 지어 보다 완벽한 시래기 맛의 진수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