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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의 일본 도자기 역사에서 발견한 조선의 숨결

yellowday 2014. 4. 6. 06:22

입력 : 2014.04.03 15:11

큐슈 열차 도시락 랭킹 1위 '아리타 자기 카레 도시락'
조선인 도공들의 손에서 처음 탄생한 '아리타 자기'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과자집이 나왔다면, 일본 큐슈의 사가현에는 다리에서부터 도시락까지 온통 도자기로 꾸며지고 만들어진 마을이 있다. 바로 일본 도자기의 근원(根源)지인 아리타(有田焼)와 이마리(伊万里) 마을이다. 한집 건너 한집이 도자기 가마가 있어 한국에서 편의점 찾는 것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 도공의 삶과 일본 자기의 매력을 엿보기 위해 사가현으로 향했다.

아리타 자기를 생산하고 있는 후쿠가와 제기는 도자체험과 아리타 자기를 구매할 수있는 'JIKIGURA'를 운영하고 있다.

아리타 자기를 생산하고 있는 후쿠가와 제기는 도자체험과 아리타 자기를 구매할 수있는 'JIKIGURA'를 운영하고 있다.

아리타는 사가현 서부에 위치한 조용한 산간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자 골목골목 창가 진열장에 놓인 찻잔, 소바 그릇, 화병 등 색색의 도자기들이 눈길을 끈다. 현재 약 150개의 가마에서 아리타 자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대표적인 가마는 이마에몽, 가키에몽, 겐에몽, 후쿠가와 제기, 신가마 총 5곳이다. 그중 겐에몽 가마(源右衛門)의 공방을 둘러보기 위해 찾았다.

아리타 자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는 겐에몽 가마 공방.

아리타 자기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는 겐에몽 가마 공방.

"스르륵" 행여나 방해될까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는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숨죽인 분위기 속에 도공들의 손에서 다양한 자기들이 탄생하고 있었다. 현재 약 30명 정도의 도공들이 자기의 형태부터 굽기까지 직접 손으로 공정하고 있다. 도자기 위에 밑그림을 그려내는 손끝은 섬세하기 그지없다. 겐에몽 가마의 자기는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특유의 청색이 매혹적이다. 그 바탕에 국화 무늬를 새긴 자기가 대표적이다.

큐슈 열차 도시락 랭킹 1위를 차지했던 '아리타 자기 카레 도시락'은 많은 관광객에게 인기있다.

큐슈 열차 도시락 랭킹 1위를 차지했던 '아리타 자기 카레 도시락'은 많은 관광객에게 인기있다.

아리타의 도자기는 다방면에서 쓰이고 있다. 거울, 세면대, 콘센트까지 모두 자기로 되어있는 겐에몽 가마의 화장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리타 자기 카레 도시락이 대표적이다. 이 도시락은 큐슈 열차 도시락 랭킹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도시락을 다 먹고 아리타 자기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역 앞의 카페 갤러리 아오타와 역 안의 마트에서 구입 가능하다.

'JIKIGURA'에서는 아리타 도자체험을 할 수 있고 추후에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JIKIGURA'에서는 아리타 도자체험을 할 수 있고 추후에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직접 나만의 아리타 자기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후쿠가와 제기가 운영하고 있는 아울렛 'JIKIGURA'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후쿠가와 제기에서 만들어내는 자기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체험한 도자기는 850도의 가마에서 10시간 정도 구워 택배로 발송해 준다.

도산신사에 오르면 이삼평의 비를 볼 수 있고 아리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도산신사에 오르면 이삼평의 비를 볼 수 있고 아리타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리타 자기를 주목한 것은 300년이라는 긴 역사 때문만은 아니다. 17세기 초 강제로 끌려온 수많은 조선인 도공들이 발전시켰던 자기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은 자발적이 아닌 강제로 끌려온 것이 우리에겐 가슴 아픈 역사로 남아 있다. 그래서 더욱 아리타 자기가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리타의 도자문화를 발전시킨 인물 가운데 도공 이삼평(李参平)이 있다. 그는 아리타(有田)의 이즈미산(泉山)에서 백자광(白磁鉱)을 발견해 일본 최초의 자기를 구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수많은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어 냈고,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그가 살던 긴코우도 지명에서 이름을 따 '가나가에 삼페에'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아리타 마을에는 이삼평을 기리는 비가 도산신사(陶山神社)에 모셔져 있다. 이 기념비는 이삼평의 공적을 칭송하고 아리타 자기 창생 300년을 기념해 세워진 것이다. 매년 5월 4일에는 도자기의 번영을 기원해 도조제(陶祖祭)가 열린다.

일본의 골든 위크를 대표하는 축제인 아리타 도자기시장은 매년 4월29일∼5월5일 사이에 열린다. 이 시기에는 도자기 팬들의 방문으로 조용한 산간 마을을 북적이게 한다. JR아리타역부터 가미아리타(上有田)역까지의 약 4km, 600개를 넘는 가게가 늘어선다.

비밀의 도자기 마을 '비요(秘窯) 마을'

아리타 마을에 이어 사가현의 또 다른 자기의 명소 비요마을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압도당한 것은 도자기가 아니라 고요함과 평안함이었다. 살랑이는 바람에 풍경은 청아한 소리를 냈다. 산수화와 같은 기암과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굴뚝 연기가 비밀스러운 도자기 마을을 연출하고 있다.

이마리 자기를 생산하는 '비요(秘窯) 마을'에서는 30곳의 가마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마리 자기를 생산하는 '비요(秘窯) 마을'에서는 30곳의 가마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에도시대 사가 나베시마번 막부가의 물건을 굽는 가마가 놓여, 조정이나 막부의 집 등에 헌납하는 최고급의 도자기가 구워진 곳이다. 현재는 옛 도자기법을 이어가고 있는 약 30곳의 가마가 3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마리 자기의 중심이 됐다.

자기로 된 다리를 건너 돌층계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설명판, 지도, 집의 벽 등 자기가 아닌 것이 없다. 이런 풍경이 신기해서인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연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판매장을 찾은 관광객들은 취향에 맞는 자기를 고르기 위해 눈과 손이 바쁘다. 꼭 자기를 구매하지 않아도 고즈넉한 마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다양한 자기를 구경하는 것이 진정한 이 마을의 매력일지 모른다.

비요 마을에서는 다양한 이마리 자기를 구경할 수 있고 구입할 수 있다.

비요 마을에서는 다양한 이마리 자기를 구경할 수 있고 구입할 수 있다.

공간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비밀의 마을이라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이 없다면 쇠락하고 만다. 봄과 가을에는 개최되는 도자기공방의 시장에 맞춰 사가현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