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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왕소군

yellowday 2014. 2. 5. 10:53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보시다시피 원래 이 구절은 시에서 유래합니다.

한(漢) 원제(元帝) 시절이었습니다.
전국에 후궁을 모집한다는 조서가 내려 각지에서 수 천명의 궁녀들이 입궁했습니다. 이때 18세 아리따운 처녀인 왕소군도

후궁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황제는 수천 명에 이르는 궁녀들의 얼굴을 일일이 파악할 수 없어 이들의 얼굴 모습이 담겨 있는

그림책을 화공(畵工) 모연수에게 제작토록 했습니다.


그런데 ‘브로마이드’ 제작에 외압이 작용합니다.
왕후장상의 딸들은 원판보다 더 나은 얼굴로 그려지기 위해 화공에게 뇌물을 바쳤습니다.
그 딸들의 얼굴은 ‘포토샵’ 처리되어 등재되었겠지요.
반면 집안이 빈천했던 왕소군은 향응을 제공하지 못했고 이에 열받은 화공 모연수는 원판보다 더 엉망으로 그렸습니다.
브로마이드를 판단 기준으로 삼고 궁녀들을 간택했던 황제에게 왕소군이 눈에 띄지 않았으며

그녀로서는 회임의 기회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중
5년 후 흉노족 우두머리 중 한 명인 호한야라는 인물이 한 원제를 알현키 위해 수도 장안(長安)으로 왔습니다.
각종 조공 물품을 가져온 호한야의 충성에 기분이 ‘업(up)’된 한 원제는 호한야에게 궁녀 중 한명을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전원 집합령’이 떨어진 궁녀 들 중 호한야가 선택한 여자는 바로 왕소군.
수천명의 후궁 중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고 고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호한야가 왕소군을 선택한 후 그제서야 한 원제는 자신의 후궁들 중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왕소군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 바로 화공 모연수의 농간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만 황제로서 한 번 내린 결정을 다시 번복할 수도 없었기에 결국 왕소군은 호한야를 따라 흉노 땅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에 화공 모연수는 결국 ‘배임죄’로 참수되고 맙니다.

봄이면 인구에 회자 되는 이 구절은 바로 ‘돈이 없어 오랑캐 땅으로 끌려가게 된’ 왕소군의 한 맺힌 읊조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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