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폭염

yellowday 2013. 8. 11. 10:43

 

입력 : 2013.08.10 03:01

중국 둔황(敦煌)에 간 적이 있다. 하필 한여름이었다. 사막 도시답게 섭씨 40도 넘는 폭염에 숨이 턱 막혔다.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 땡볕 내리쬐는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 관공서와 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호텔방에 갇혀 선풍기 바람을 쐬며 티셔츠를 빨았다. 잔뜩 달궈진 창문턱에 빨래를 걸쳐놓고

 설핏 잠이 들었다. 몇 십분 잤을까 깨보니 티셔츠는 물기가 쪽 빠진 미라 같다. 손으로 만지자 비스킷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2003년 서유럽 하늘은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올라온 더운 공기로 뒤덮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날마다 40도 웃도는 무더위에 녹초가 됐다. 밖에 나가면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더위로 숨진 사람이 1만명을 넘었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 혼자 사는 노인들이 냉장고 문을 열어놓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다

눈을 감았다. 유럽 여덟 나라에서 3만5000여명이 더위에 목숨을 잃었다. 요 며칠 우리 폭염에 시달리자니 10년 전 파리가 떠오른다.


	만물상 일러스트

▶그제 울산 남구 고사동 기온이 40도를 찍었다. 1942년 대구가 40도를 기록한 지 71년 만이다. 다만 울산 남구는 가뜩이나 뜨거운 석유화학공단 지역이고

무인 장비로 잰 기온이어서 공식 기록으로 남지는 않는다고 한다. 남구에서 제일 큰 재래시장 신정시장의 과일전은 그제 과일 밑에 얼음을 깔고 장사했다.

그냥 뒀다간 수박이 겉부터 노랗게 익어버리기 때문이다. 다른 과일도 연한 부분부터 물러져 나중엔 속이 쏟아져 나온다고 한다.

 

▶신정시장에 손님이 끊겨 국밥집은 그제 하루 여섯 그릇밖에 못 팔았다. 그렇게 장사가 안 되기는 가게 연 지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요즘 우리 기후엔

상식이 없다. 49일이나 이어지며 최장 기록을 세운 장마도 중부에 쏠렸고 남부는 비 구경하기 힘든 '반쪽 장마'였다. 크게 봐서 모든 게 온난화 탓이라고 한다.

평균기온이 해마다 0.1도씩 올라가 2050년이면 아열대기후가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장 무더위가 8월 하순까지 간다니 밤잠 이룰 일이 걱정이다.

 

▶헤르만 헤세는 여름을 '죽음의 계절'이라고 불렀다. 꽃들이 땡볕에 시들어 떨어지면서 이듬해 봄을 위해 '거룩한 거름'이 된다고 했다. 그는

 "사람이 이런 자연법칙에서 예외인 양 바삐 돌아다니는 게 기이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니 여름엔 밖으로 나다니기보단 제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게 좋겠다.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내린다'는 백석 시집이라도 펼쳐보면 어떨까. 상상의 눈밭을 거닐며 더위를 쫓아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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