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1999년>
스무 살 언저리 어느 날, 친구 손에 이끌려 아주 작은 섬으로 소풍을 간 일이 있다. 그곳은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섬, 도심의 뒷골목에 있는 찻집의 이름이 섬이었다. 그곳은 정현종(69) 시인의 시 〈섬〉을 기리는 집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조그만 액자로 걸려 있던 시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처럼 외로운 심사를 위로 받았을까. 나 혼자만이 '섬'이 아니라 모두가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고마운 시였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중략)/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시인의 다른 시처럼 나는 그 섬을 다녀온 후 언제나 '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즐거운 것은 대개 피어나거나 솟아나는 형태로 온다. 팬 보리밭의 종달새를 보라. 아지랑이를 보라. 봄에는 싹이 솟아나고 여름엔 숲이 솟는다. 가을엔 하늘이 드높아 짙푸르지 않던가. 꽃대도 솟고 웃음도 솟는다. 만국기 아래 운동회의 아이들이여! 그 통통 튀는 솟아오름이여!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샘솟는' 것. 샘솟는 것엔 우선 견딜 수 없는 싱그러움이 있다. 울음마저도 샘솟는다고 하면 얼마나 후련한가. 그윽하고 차분한, 그럼에도 발 동동 구르고 싶은 기쁨과 인내가 거기엔 있다.
시인 정현종은 기쁨과 솟아오름의 시인이다. 이 시인의 웃음은 한국 문단사가 기록할 최상급의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싹'이나 '샘물'이나 '날개'처럼, 또 '풍경'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것들을 찬양한다. 그래서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바람이 시작하는 곳〉)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리요. 제아무리 큰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것도 가볍게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낼 정도의 쾌활함과 저력이 그의 50여년 가까운 시력 내내 일관되게 빛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삶이 마냥 솟아오르기만 하던가. 역설적이게도 솟아오르는 것은 무거움의 전제 없이는 가능하지 않는 것. 이 시는 그 양가적인 세계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너'는 맘속에서 시소와 같다. 사랑도 살아 있는 것이므로 일정할 수 없으니 때로 무겁게 가라앉는 갈증이 된다. 갈증이 없다면 샘솟음도 없는 것. 샘솟음이 곧 고통이고 갈증이 기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은 일찍이 그 사랑을 '고통의 축제'라고 정의했었다. 참 물맛을 알기 위한 갈증의 축제, 그 마라톤이 곧 사랑인 셈이다. 갈증과 샘솟음의 양 극단을 오르내리는 시소놀이에서 높이 샘솟을 때 우리는 세상과 우주의 환희를 알며 다시 낮게 내려앉을 때 겸손과 견딤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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