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남해 가천(加川)마을 다랑이논(계단식 논)을 국가 명승 제15호로 지정할 때 가슴속에선 두 개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다. 하나는 문화재로 되면 형질 변경을 못한다며 강하게 반대한 주민들을 마침내 설득해 지정했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지리산 피아골의 그 장대하고 처연한 계단식 논이 논주인들의 반대로 결국 평범한 산밭과 매운탕 집으로 변하고 만 안타까움을 겪고 있던 터였다. 또 하나는 우리의 주식(主食)인 쌀을 생산해내는 논을 문화재로 보존하게 된 씁쓸한 현실이었다.
쌀 80kg의 농협 수매가가 14만원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논은 날로 버림받게 되어 비닐하우스로, 농공단지로, 과수원으로 변해 버리고 있다. 그렇게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논이야말로 국토의 원형질이고,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각성이 일어났다. 특히 한 평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다랑이논은 조상의 땀과 슬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지(大地) 미술 같은 것이다. 그 중 가천 다랑이논은 남해 바닷가 가파른 산비탈에 100계단도 넘게 층층이 펼쳐지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랑이논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만으로 보존되는 것은 아니었다. 농사꾼이라고는 노인들만 남아 있고, 다랑이논은 기계경작이 불가능하다. 한때는 육지의 인분을 '남해 똥배'로 날라 기름지게 가꾸었던 이 알뜰한 논이 넝쿨풀로 뒤덮이고 있다. 그래서 남해군에서는 전통농법 시범마을로 지정하여 영농후계자들을 투입하는 방안을 내놓으며 어렵사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랑이논 하나 보존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그러나 가천 다랑이논이 명승으로 지정된 이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아무도 찾는 이 없던 이 궁벽한 섬마을이 이제는 한 해 25만명이 찾아오는 남해의 상징마을로 되었다. 마을 집들은 모두 민박집으로 새 단장을 했고 윗마을 산자락엔 펜션들이 늘어섰다. 마치 일본 규슈(九州)의 유후인(由布院)이 농업과 목축을 살린 친환경 온천 마을로 되었듯이, 가천마을은 다랑이논과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광을 내세운 슬로 타운(slow town)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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