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놓고
주인은 삼십년을 살다가
도망 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1996년>
소설가 현기영의 발문을 빌려 말하자면, 좀 '지랄 같은 성깔'과 '흰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는 개구쟁이의 웃음'과, 그리고 '시적 허기증'이라 할 만한 왕성한 창작 욕구가 가장 그답다고 한다. 그가 바로 이재무(50) 시인이다.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고향과 유년에의 기억, 도시와 문명의 피로 등 자신의 삶 체험을 진솔하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는 "퇴고할 필요가 별로 없는 완전한 모습의 시가 초고부터 씌어진 경우 좋은 시가 많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감나무〉야말로 단숨에 쓰여진 시임에 틀림없다.
고향을 버리고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감나무 한 그루쯤은 담고 산다. 흰 보석 같은 감꽃과 달착지근했던 그 꽃맛, 새파란 감잎과 툭 툭 떨어지던 풋감들이 만들어내는 그 그늘, 꽃보다 더 고왔던 붉은 감잎과 그 거름, 감과 곶감과 까치밥의 그 달콤한 맛…. 그것들이 있는 풍경이란 하나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이 고향 같은 '감'은 도무지 어디서 비롯된 이름일까.
15년 동안을, 주인이 도망치듯 떠난 빈집에서 꽃을 내고 잎을 내고 감을 내며 홀로 고군분투하는 감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은 애틋하다. 성큼 들어설 주인을 마중이라도 하려는 듯 사립 쪽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다. 연초록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잎이 되고 그 잎이 질 때, 한 기다림을 다 살았을 때, 그렁그렁 붉은 눈물을 매달고 바람의 안부에나 귀기울이는 것이리라. 날렵하게 포착해낸 이 짧은 시의 여백에는 농촌의 붕괴와 이농 현상이 있고, 한 가족의 곡절 많은 삶이 있고, 녹록치 않았을 도시살이가 있고, 무작정의 세월이 있고 계절이 있고, 그리움과 기다림이 있고, 인정이 있고 섭리가 있다.
이런 감나무는 또 어떤가. "저물 무렵 밭둔덕에 외로이 서 있는/ 늙은 감나무와 나란히 서서/ 인생의 황혼을 억세게 갈무리하시는/ 아부지의 등허리엔/ 살아온 날의 높고 낮은 등고선이/ 가파르게 펼쳐져 있다"(〈아부지〉). 이 감나무는 주인과 함께 늙어가며, 뻗어가는 가지들을 잘 갈무리하고 있다. "초겨울 인적 드문 숲속/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위태위태한 빨간 슬픔의 홍시/ 하나의 마음으로 기다린다"(〈기다림〉). 이 감나무는 기다림을 완성시켜줄 '큰 입 가진 임자'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고향이란 이런 감나무처럼 애틋하게 기다려주는 곳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이런 감나무로 통하는 것이다.
새순이 돋았으니 감꽃마저 지고 나면, 감이 열리고 감잎이 물들 것이다. 그리고 까치밥 하나 오래 맺혀 있으리라. 고향 빈집에 남겨두고 온 저 감나무는 그렇게 삼십년을 알콩달콩 한 식구처럼 살았으니, 십오년에 또 십오년은 더, 피붙이처럼 그리워할 것이다. 속을 바짝바짝 태우며 그리 오래 기다렸던 감나무니 그 감은 또 오죽 달 것인가.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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