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5] 창덕궁 호랑이

yellowday 2011. 4. 3. 08:48

요즘 궁궐에 가보면 한여름의 푸름이 가득하다. 특히 창덕궁(昌德宮) 후원에서는 나무 사이로 짐승이 뛰쳐나올 것만 같다. 실제로 옛날에는 창덕궁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 〈세조실록〉 11년(1465) 8월 14일 조에는 "창덕궁 후원에 호랑이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북악에 가서 얼룩무늬 호랑이를 잡아 돌아오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속설에 의하면 1592년 임진왜란 난리 중에 인왕산 호랑이가 사라졌다느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호피(虎皮)를 좋아해서 다 잡아갔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선조실록〉 36년(1603) 2월 13일자에는 "창덕궁 소나무 숲에서 호랑이가 사람을 물었다. 좌우 포도대장에게 수색해 잡도록 명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이어 선조 40년(1607) 7월 18일자에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쳤는데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命)을 내리다"라는 기사가 있다. 인왕산 호랑이의 활동은 여전했던 것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어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호환(虎患)이라는 일종의 사건사고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호환에 관한 마지막 기록은 고종 20년(1883) 1월 2일자에 나온다.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에서 아뢰기를 삼청동 북창(北倉) 근처에서 호환이 있다고 하여 포수를 풀어서 잡아내게 하였습니다. 오늘 유시(酉時·오후 5~7시경)에 인왕산 밑에서 작은 표범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봉하여 바칩니다. 범을 잡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상을 주고 계속 사냥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사람을 물어갈지언정 그리운 것이 인왕산 호랑이이다. "인왕산 호랑이 으르르르, 남산의 꾀꼬리 꾀꼴꾀꼴"이라는 서울의 전래민요가 더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미 한반도에서 멸종된 호랑이가 되돌아올 리 없는 일이다. 다만 근래에 그나마 녹지가 확보되어 가면서 다시 산짐승들이 하나둘 궁궐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2005년 10월 25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창덕궁에 멧돼지가 자주 출몰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를 보면서 서울의 자연이 살아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좋아한다면 옛날 분들이 이를 보고 무어라고 할까.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