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에 담은 특별한 조선, 엘리자베스 키스
외국인이 바라본 조선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일제 강점기, 조선에 머물며 조선의 생활 풍속과 사람들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렸던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영국 화가인데요. 키스는 우리 나라를 사랑해 ‘기덕’이라는 한국이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글들을 통해서 조선을 느껴볼까 합니다.
조선의 아침 안개, 1922년
엘리자베스 키스는 일본에서 판화 공부를 하다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끝난 직후, 조선에 왔습니다. 일제의 지배하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았던 조선인들에게 한눈에 매료된, 키스는 조선의 방방곡곡을 돌아 다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한국사랑은 그림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키스는 여동생과 함께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3권이나 출판했는데, 이 중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원제 Old Korea> 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달빛 아래의 서울 동대문' 1920년 '서울 동대문의 해돋이' 1920년
엘리자베스 키스는 동대문을 소재로 작품을 몇 점 남겼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들의 시간적 배경은 모두 이른 새벽이거나 저녁인데요. 낮에는 ‘그림 그리는 외국인’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키스는 주로 새벽이나 저녁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캔버스를 세워놓은 순간 어디서 나타나는지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대부분 아이들이거나 나이 많은 남자들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서 구경하는 바람에 어떤 때는 포기하고 집에 왔다가, 새벽닭이 울 때 다시 찾아와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떻게 아는지 사람들이 몰려왔다.”
미망인
위의 그림은 <미망인>으로, 그림 속 주인공은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인입니다. 키스의 그림에는 왕실의 공주, 고위 정치가 등은 물론이고, 평범한 시골의 할아버지, 농사꾼, 아이들, 아낙네들까지 다양한 조선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지켜 보면서, 조선인들의 독립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강인한 성품을 잘 알게 되었고 또 존경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간사한 농간 탓에 조국을 잃었고 황후마저 암살당했으며, 그들 고유의 복장을 입지 못하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일본 말만 사용하도록 강요 받았다.
나는 길을 가다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 옷에 검은 잉크가 마구 뿌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 경찰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흰옷 입은 한국인들에게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시 셔우드 홀 선교사가 벌이던 ‘결핵퇴치운동’에도 동참했습니다. 키스는 해주 결핵요양원에서 1932년부터 1940년까지 발행한 크리스마스 실의 도안을 3번이나 그려줬습니다. 당시 크리스마스 실에 그림을 그려준 화가는 키스와 운보 김기창뿐입니다.
'대금 연주자' 1927년
엘리자베스 키스는 ‘대금 연주자’ ‘내시’ ‘종묘제례 관리’ ‘무인’ 등 사라져가는 조선의 유물들을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키스의 몇몇 그림들은 장신구까지 자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는데요. 그녀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일본에 대한 분노와 경멸을 표현했고,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습니다.
"지난 십 수년간, 조선의 탁월한 그림, 도자기, 조각들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나는 일본이 이 귀중한 문화재를 본고장인 한국으로 반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올바른 처사이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이렇게 글과 그림을 통해 일제의 잔인함을 세계에 알렸습니다. 또한, 한국을 그린 작품들로 한국 밖에서 전시회를 연 최초의 서양화가이기도 하죠. 그녀는 20세기 초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전도사였습니다.
키스는 1936년 이후, 다시 우리나라를 방문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는데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엘리자베스 키스 전시회가 열려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 yellowday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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