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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미스트롯] 노래는 육상경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1등을 겨룬다. 그것이 트로트다

yellowday 2021. 2. 5. 06:22

한현우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2.05 05:50

 

영지와 전유진이 떨어진 것은 의외였다. 영지가 서유석 노래 ‘가는 세월’을 고른 것은 좀 아쉬웠다. 서유석은 지금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모르는 가수이고, ‘가는 세월’은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 같은 곡이다. 왜 그녀가 이 곡을 선택했을까. 어쩌면 영지는 이 부질없는 경연에서 탈락할 것을 알면서 이 곡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영지는 노래의 마지막 네 마디를 반주 없이 불렀는데 이것은 순위와 상관 없이 노래에 대한 절정의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다. 건반이나 현, 리듬 악기의 도움 없이 네 마디를 끌고 가는 것은 명창만이 시도할 수 있는 경지다. 나는 결선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된 영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다. 결선에 오른 인생과 예선에 참가한 인생은 똑 같이 아름답다고. 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 그대만이 할 수 있는 무반주 네 마디를 들려줘서 고맙다고.

줄곧 전유진을 응원해 왔는데 이날 아예 무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렸다. 전유진의 성악적 발성법에서 거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이 10대 여자아이는 뱃속에서 소리를 끌어올려 미간에서 뿜어내면서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파바로티 같은 전형적 성악가의 발성을 들려줬다. 아직 남은 날이 많으니 얼마든지 더 나아질 것이다. 전문가들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일개 청자로서는 섭섭하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김연지의 투혼은 놀라웠다. 방송 전날 병원에서 성대가 부었다는 진단을 받고 초조해 하던 그녀는 노심초사하는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노래에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얼마나 매정한 일인가. 노래는 높이뛰기나 멀리뛰기가 아니다. 경기 전날까지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계체량을 통과하는 권투선수처럼, 이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병원을 오가며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그런 투혼의 그녀가 “여자는 꽃이랍니다/ 혼자 두지 말아요” 같은 노래를 부른 것은 좀 어색했다. 여자는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조용필 노래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조용필은 트로트 가수가 아니며, 트로트로 분류되는 그의 노래 몇 곡에 대해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을 아끼기 때문이다. 아마도 트로트 가수로 불리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라고, 그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은가은은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선택했다. 물론 이 곡은 트로트가 아니다. 조용필도 부르기 어려워하는 곡이다. 그러나 은가은의 ‘바람의 노래’는 매우 좋았다. 마치 성악가가 조용필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은가은은 울림통이 큰 가수 같지는 않았는데 노래를 횡격막 근육으로 끌어올리는 능력이 있었다. 이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사람 중 99%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부분을 “이 쎄쌍 모든 것들을”이라고 부른다. 은가은은 이 부분에서 발음을 정제해 자기 노래로 만들었다. 심사위원들은 은가은을 고음을 잘 내는 가수라고 평했지만, 그것으로는 은가은을 말하기 부족하다. 고음이란 무엇인가. 160㎞에 이르는 투수의 강속구이며 관자놀이에 명중시키는 레프트훅이며 턱을 부수는 니킥이다. 이것이 노래의 전부인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고음을 잘 내기 때문에 노래를 잘 한다고 말하는 것은 미원을 넣어서 찌개가 맛있다고 말하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홍지윤이 경기민요를 불러 시청자들을 흔들었다. 나는 이런 노래를 젊은 가수가 선택해 부르고 심사위원들이 좋은 점수를 주고 관객들이 감동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 아무도 평소에 경기민요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홍지윤 같은 명창이 “배 띄워라” 같은 가사를 열창할 때 우리는 뱃속의 무엇이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배 띄우고 달 뜨고 술이 익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날 심사위원을 비롯해 출연자들끼리도 “고생했다”는 말을 참 많이 했다. 왜 우리는 즐거운 일을 하면서 고생(苦生)했다고 하는가. 그것이 트로트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다들 참 고생이 많다. 우리는 고생하고 있고 또 고생했다고 서로 위로하면서 살아간다. 트로트는 “고생했다”고 어깨를 다독이는 음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