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940년 《문장(文章)》에 발표되었다. 일제강점기 하에서 가중되는 고통의 상황을 초극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표현된 작품이다. 즉 수난의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은 저항시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광야》《청포도》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이다.
산산조각/ 정호승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법정스님은 “종이 깨어져서 종소리가 깨어져도 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깨진 종일지라도 종소리를 울리는 한 종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못나도 못난 그대로 나 자신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의 희망과 꿈을 종에 비유한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나 좌절로
그 종은 수시로 깨어졌고 깨지고 있고 장차에도 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