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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직영백화점 체제… -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yellowday 2015. 2. 10. 22:17

입력 : 2014.12.26 18:08 | 수정 : 2014.12.26 20:32

해방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국내 백화점은 명목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백화점 업계는 경영 경험 부족과 자본 부담 등으로 백화점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임대상가의 수준에 머무는 단계였다.

1960년대 초까지 전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한국의 백화점은 1963년 삼성이 동화백화점을 인수해 만든 신세계백화점이

출범하면서 달라졌다. 백화점 직영화를 위해 매장의 직영화율을 해마다 높여가면서 주목할만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신세계는 1969년 4월 국내 최초로 직영백화점 체제를 선언해 백화점의 새로운 변혁을 가져왔고, 국내 백화점의 현대화 시대를 열었다.

또 은행계 카드보다 11년이나 앞서 1969년 국내 최초로 크레디트 카드제도를 도입해 신용사회 구축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처럼 1969년은 한국 유통의 현대화를 이루는 전기를 마련한 해이다. 이제 1969년에 신세계백화점에서 일어났던 ‘유통의 그날’로 떠나보자.

3월 말

해방 이후 백화점이라기 보다는 임대상가로 운영돼오던 동화백화점을 인수한 신세계는 백화점의 근간인 백화점 직영화를 위해 직영 매장의 비율을 해마다 높여 갔다. 백화점이라면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통일된 경영 의지 아래 부문별 경영을 하는 대형 소매점 형태를 말하며, 이는 직영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3년 12%에 불과한 직영율은 64년 23%, 65년 38%, 66년 50.3%로 증가했다. 1967년에 들어서면서 직영화율이 50%를 넘어서자 어느 정도 백화점다운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1968년에는 65%의 직영 매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69년 3월 말에는 약 85% 수준으로 직영율을 높였다. 이와 같이 신세계는 직영 백화점 체제 완비와 함께 보다 새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됐고, 소비자 보호는 물론 실질적인 유통 근대화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정찰제 전면 실시, 검품 제도 개선, 메이커 직거래 확대 등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4월 1일

신세계는 1969년 4월 1일 ‘최고의 전통 직영 백화점’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걸고 국내 최초로 직영 백화점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직영백화점 출범은 지금과 같은 백화점이 정착하게 된 시발점으로, 한국 유통사의 시대 구분점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신세계가 직영체제를 완비하고 선진 경영기법을 도입함에 따라 소비자들의 신뢰가 더욱 높아졌고, 이렇듯 사세를 확장해 나가자 이에 자극 받은 다른 임대 백화점들도 서서히 직영화에 동참하게 됐다. 신세계의 직영 백화점 출범은 우리 나라 유통 근대화에 전기를 마련한 계기가 됐으며, 이때부터 현재와 같은 백화점 형태가 국내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5월 14~18일

백화점 4층에 위치한 신세계 화랑에서 호랑이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가졌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6월 초

1969년 6월 창간한 [상계]는 남대문시장 주변 상가 소식을 전하는 월간지로, 신세계백화점의 당시 매장 모습이 수록됐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6월 12~22일

직영백화점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전관 바겐세일을 실시했다. 바겐세일 기간 동안 냉장고 등 경품부 특매와 피어리스 화장법 특별쇼, 반찬조리시범 특별쇼 등의 행사가 열렸다. 당시 판매상품 가격을 보면 현재와는 다른 양상을 알 수가 있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또한 이날 국내 최초로 여대생을 아르바이트로 채용했다. 당시는 판매직에 대해 사회적 인식이 낮아 판매원 스스로도 열등감을 느껴, 아는 친척이나 친구들이 오면 몸을 숨기곤 했다. 이러한 판매사원들에게 직업에 대한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기획한 것이 여대생 아르바이트제였다.

100 여명 정도 채용을 목표로 아르바이트 모집광고를 냈는데 이화여대, 숙명여대생 등 450여명이 응모를 했다. 단순히 용돈을 벌겠다는 학생 외에도 백화점에서 하는 일을 알고 싶어서 응모한 학생도 상당수여서 당초 100명 채용 계획을 수정해 응모자 전원을 채용했고, 언론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여대생 아르바이트 채용 이후, 당시 여대생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있었던 판매 사원들은 자기 직업에 대해 긍지를 가지게 됐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6월 14일

1968년 하반기 신세계는 전관 직영화를 위한 준비작업과 함께 새로운 판매기법의 개발에 나섰다. 그 가운데 하나가 크레디트 카드 제도에 의한 외상 판매제도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크레디트 카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시기상조라는 반대도 있었으나, 신세계는 앞서가는 백화점으로 유통업계의 발전과 신용 사회의 구축을 위해 이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1969년 6월 14일에 도쿄에서 발급된 카드 378매가 신세계에 도착했다.



7월 1일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한국 최초의 신용 판매 시대가 열렸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용카드에 의한 판매가 신세계를 통해 최초로 시행됐다. 신용카드 도입 초기에는 카드에 대한 인식이 되어 있지 않아, 처음에는 신세계 및 삼성 그룹 간부를 대상으로 발급했다. 이와 같이 유통 근대화에 대한 신세계의 사명감은 우리나라에 신용사회의 뿌리를 내리게 했다.


7월 초

1969년 7월에 신세계 통신판매 카다로그가 발간됐다. 카다로그를 펼쳐보면 통신판매에 대한 설명과 상품 및 불입금 등의 정보가 수록돼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세계 통신판매 카다로그(박물관 소장) 표지
신세계 통신판매 카다로그(박물관 소장) 표지



신세계백화점의 통신판매란?

① 소비자 여러분의 사랑과 인기 속에 자라온 저희 신세계 백화점에서는 흐려지고 있는 상도덕을 바로 잡고 일부 유사업체의 과대선전 및 광고 현혹이 없이 밝고 희망에 찬 내일을 약속해 드리기 위해 금번 백화점 사상 처음으로 “통신판매”를 실시하기로 함

② 신세계는 통신판매 목표로서 소비자의 이익증진, 중간상인의 배제, 안전한 소비생활, 우량품 생산 적극 장려, 사회경제에의 공헌 등을 설정함

③ 전국 어디에서나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상품을 엄격한 정찰로서 안심하고 살 수 있으며, 몫 돈 없이도 적은 금액으로 누구나 값싸게 고급 살림을 장만할 수 있으며 집에 앉아서 서신으로만 연락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물품을 안전하게 댁까지 직접 배달 받을 수 있다.


	유통 그날, 1969년 4월 1일



10월 21~31일

추석 전관 바겐세일을 실시했다. 이때 주부 2000여 명을 1일 판매원으로 채용했다. 대한어머니회, 주부클럽연합회, 한국부인회, YWCA, 가사원 등 여성 단체의 구호금 및 기금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이들 단체 회원들과 가정 주부를 채용해 하루에 200명씩 근무하도록 했다. 주부는 물론 미혼여성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적었던 당시에 주부 아르바이트 제도는 큰 호응을 얻었다.


	매장 내 주부 판매사원 모습
매장 내 주부 판매사원 모습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