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山 * Korea

길을 걷고 싶은 날, 부산 회동 수원지길

yellowday 2016. 1. 15. 16:30

입력 : 2016.01.14 10:54 | 수정 : 2016.01.14 10:55

                                                                     

깊은 고민이 생기면 나는 걷는다.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몇 시간 뒤엔 
엉킨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가 된다. 
그건 부산에서 걸었던 두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동 수원지길 자연학습 관찰로는 걷기 좋은 나무 데크로 조성됐다.

회동 수원지길 자연학습 관찰로는 걷기 좋은 나무 데크로 조성됐다.

길을 걷고 싶은 날, 부산 회동 수원지길

 45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회동 수원지는 이제 걷기 좋은 길로 새롭게 탄생했다.

45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회동 수원지는 이제 걷기 좋은 길로 새롭게 탄생했다.

길에도 운명이 있다
회동 수원지길 
 
부산이 처음일 리가 없었다. 고향도 아니고 어떤 애틋한 추억이 남아 있는 곳도 아니지만 '부산'이라는 두 글자는
언제나 마음에 피어 있는 꽃이다. 좋아하는 책을 몇 번이고 읽는 것처럼 부산을 오갔다.

그런데 불현듯 깨달은 사실은 부산에서의 행동반경이 언제나 해운대와 남포동 인근으로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책을 한 챕터만 읽고 완독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마침 그날은 코에 흙내음을 잔뜩 묻히고 눈에는 빨갛든 파랗든
자연의 색을 가득 담고 싶었다. 천천히 마냥 걷고만 싶은 날이었달까.

다행히도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여럿이다. 도심과 자연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스물 네 개의 갈맷길이 두루 포진해 있고
그 사이로 제각각 이름을 가진 둘레길들이 촘촘하게 얽혀 있다.

그중에서도 회동 수원지길은 다양한 자연 테마가 있는, 숲과 호수를 끼고 걷는 차분한 길이다. 상현마을에서부터
오륜동, 회동댐까지 이어지는 6.8km 구간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유가 있다.

회동 수원지는 식수가 부족했던 시절, 수영강의 흐름을 막아 1942년에 조성됐다. 이후 1964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았던 것.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으니 자연이 훼손당할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나서야 회동 수원지는 사람을 마주할 운명과 맞닥뜨린다.

2010년, 금정구는 자연을 따라 산책하기 좋은 45km의 '웰빙그린웨이'를 개발했는데 금정산길, 범어사길, 실버로드,
온천천길, 윤산길, 수영강길에 이어 수영강상류길과 회동 수원지길이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완성됐다.

굳게 잠겼던 문이 열리자 소문은 금세 퍼졌다.

회동 수원지길은 날것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면서도 사람의 손에 의해 잘 다독여졌다. 전망 좋은 곳에는 전망대가 세워졌고
편편한 데크 길, 부드러운 황토를 곱게 깔아 놓은 황토길 등 누구라도 쉽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조성됐다.

수원지를 따라 바람에 우아하게 흩날리는 갈대며 부들이 운치를 더하고 호수 건너에는 아홉산이 병풍처럼 길을 감싸고 있는
풍광이 아름답다. 그래서일까, 예부터 선비들이 사색을 즐겼다는 이야기가 많단다.

회동 수원지는 금정구와 해운대구, 동래구 일대 약 20만 세대에 식수를 공급한다. 최대 저수량은 1,850만톤, 하루 생산되는
식수량만 10만톤에 달한다. 하지만 길이 개방되면서부터 회동 수원지는 남모르게 속을 앓고 있다.

방문객들이 무분별하게 버리고 간 쓰레기가 늘면서 식수 공급의 기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것이다. 베일에 싸여 있던
회동 수원지길의 개방은 고맙다. 다만, 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대신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를 잊지 말아야겠다.

사람들의 안전과 수원지 보호를 위해 개방시간을 일부 지정하고 언론 보도에도 힘쓰는 등 지자체들의 노력이 있지만
어느 곳보다 더 여행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길 중간중간에는 쉬어 가기 좋은 정자가 마련돼 있다. 이 길에서 사색을 즐겼던 선비처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 보자.

길 중간중간에는 쉬어 가기 좋은 정자가 마련돼 있다. 이 길에서 사색을 즐겼던 선비처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 보자.

김민정 갤러리 & 카페 여림에서 바라본 회동 수원지길. 아홉산을 마주하고 있다.

김민정 갤러리 & 카페 여림에서 바라본 회동 수원지길. 아홉산을 마주하고 있다.

회동 수원지길, 어디에서 시작할지 고민이라면?

6.8km의 회동 수원지길을 완주하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린다. 회동 수원지길 안에도 각 구간별로 예쁜 이름이 붙은 길이 많다.
그중에서도 오륜동에 있는 편백나무숲길, 땅뫼산 황토길, 자연학습 관찰로가 인기 구간이다.

나무 데크로 만들어진 자연학습 관찰로는 길목마다 자연스레 뿌리내린 식물에 대한 명칭과 설명이 담긴 표지판이 설치되어
아이들 야외수업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땅뫼산 황토길은 질 좋은 황토를 공수해 조성한 길이다.

계족산 황토길의 경우 비탈길인 탓에 비에 쓸려 내려가기 쉬운 반면, 땅뫼산 황토길은 이를 고려해 평지로 조성한 길.
약 1km 가량 이어진다. 황토길 끝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니 잠시 신발을 벗고 맨발 걷기를 해보자.

한 걸을 내딛을 때마다 가볍게 발을 지압하면서 체내에 쌓인 노폐물과 독소를 정화시켜 주는 기분.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길에서 피톤치드를 한 숨 가득 깊게 들이키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김민정 갤러리 & 카페 여림

김민정 갤러리 & 카페 여림

김민정 갤러리 & 카페 여림

오륜동에 위치한 갤러리 겸 카페다. 1층에서는 도자기 체험, 소묘 및 드로잉 미술수업, 악기 연주 등 다양한 범주의
문화예술 수업이 이루어지며 2층은 갤러리 및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갤러리는 주로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해 준다.

때문에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의 모든 수익금은 갤러리 운영 및 유지에 사용된다. 야외 테라스를 지나 3층 옥상 전망대는
예쁜 화분에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작은 정원이다. 병풍처럼 펼쳐진 아홉산을 마주하며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는 필수다.

부산 금정구 오륜대로 245   051 514 6007 모든 음료 5,000원

길을 걷고 싶은 날, 부산 회동 수원지길

글 손고은 기자  사진 Travie photographer 노중훈 
취재협조 금정구청 www.geumjeon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