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에는 많은 전각(殿閣)이 있어 흔히 구중(九重) 궁궐이라며 복잡한 구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권역으로 간명히 나뉘어 있다.
하나는 나라의 정사(政事)를 돌보는 치조(治朝) 공간으로 근정전(勤政殿), 사정전(思政殿)과 여러 편전(便殿)들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는 왕과 왕비의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왕이 기거하는 강녕전(康寧殿), 왕비가 거처하는 교태전(交泰殿) 등 이른바 연조(燕朝) 공간이다. 이외에 경회루와 같은 연회(宴會) 공간이 있고, 경복궁의 녹원(鹿苑), 창덕궁의 금원(禁苑) 같은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오늘날 대통령이 기거하며 근무하는 청와대의 공간구성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궁궐에는 현대사회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었으니 이는 죽은 이를 위한 빈전(殯殿)이다.
삶과 죽음을 자연스러운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여 왕이나 왕비가 세상을 떠나면 그 시신을 모신 관이 능으로 옮겨질 때까지 머무는 곳을 그때마다 마련하는 임시 공간이 아니라 궁궐 구성의 당당한 한 권역으로 삼았던 것이다. 망자(亡者)란 이승에서 보면 세상을 떠난 자이지만 저승의 입장에서 보면 새 손님이기 때문에 주검 시(��)변에 손 빈(賓)자를 써서 빈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경복궁 서북쪽 한편에 있는 태원전(泰元殿)이 바로 빈전이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한 뒤 세상을 떠난 조대비(趙大妃)와 명성황후의 국장(國葬) 때 그 시신이 태원전에 모셔졌음이〈실록〉과 〈의궤〉에 나와 있다.
그런데 태원전 뒤쪽에는 작지만 절집의 선방(禪房) 같은 아담한 건물이 하나 더 있다. 우리 한옥은 세 칸 집이 가장 예쁘다고 하는데 이 건물은 같은 세 칸이지만 기둥이 높고 지붕이 묵직하여 아담한 가운데 진중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건물은 돌아가신 이의 위패를 모시는 혼전(魂殿)으로 숙문당(肅聞堂)이라고 한다. 망자의 혼백이 남긴 말씀을 엄숙한 마음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내일(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다고 하니 태원전 숙문당의 뜻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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